영화사랑

영화 <하얼빈>

사색의 산책 2024. 12. 25. 15:15

    안중근 의사가 1910,3월에 뤼순감옥에서 쓴 유묵을

2024,6월에 114년이 지난 후에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대면하여 시대를 초월하는

 안의사의 민족과 국가에 대한 사상의 한면을 생각해 보면서

저절로 옷깃을 여미는 것은 아마도 당연한 것이리라.

그 글귀는 "용공난용 연포기재( 庸工難用 連抱奇材)"

재주가 서투른 목수는 아름드리 나무나 진기한 나무를

잘 다루지 못한다. 즉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는 인재를

기용해야 한다는 설파이다.

 

    우리 선조들의 땅 만주 헤이룽장성 하얼빈은

영화의 시대적 배경 당시인 1909년은 제정러시아인

동청철도 기지로 상업교통의 주요도시였던 바, 

이등박문 (伊藤博文:이토 히로부미:본명:하야시 도시스케)이

러시아 재무장관 코코프초프(V.N.KOKOVSTOV)와 

조선합병등에 관한 정치,경제적인 논의를 위해 만남을

가지려했던 제국주의적 잇권이 첨예하게 걸린 장소이기도하다.

 

    안중근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1910,3월에 쓴 유묵(보물 제569-7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

 

 

    영화에서 안의사는 이등박문(伊藤博文:이토 히로부미)이

만주 하얼빈시 하얼빈역에서 내려 1909,10,26,09;30경

군중들 앞으로 다가올 무렵  한일합병의 침략원흉 늙은 늑대

이토의 심장에 3발의 권총을 발사하여  조선의 민족적 의기와

을사늑약등 불법적이고 강탈적인 일제의 만행을 전세계에

알리는 주요한 시초가 되었다.

 

    어찌보면 일본 근대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중의 한명이자

일본제국주의의 상징처럼 보이는 이토를 척살한다는 스토리는

정말 내러티부하고 뻔히 들여다보여서 이야기를 화면에서

설득력있게 만들어가는 과정등이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순적일수도 있는 내러티브를 감독,작가, 배우들의

세밀하고 전략적인 노력이 잘 조응된 작품이 탄생되었다. 

 

    영화 <하얼빈>에 대한 개인적인 단상은

쇠망해가는 융희 조선(대한제국)의 과정에서 지난

조선 의병과 민초들이 그들의 소중한 생명을 어떻게 희생하는지

그 희생의 결과가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되는지에 관심을

집중하게 한다. 

 

    이토를 척살 후 뤼순(여순)감옥에서 안중근 의사가

써내려간 동양평화론은  이토의 일본제국주의적 망상에 대한

한,청,일의 대등하고 협력적인 관계설정을 평화롭게 만들어가자는

내용으로 알려져있어 군주제 당시에는 혁신적인 구상이지만

1910,3,26. 안의사가 뤼순감옥에서 생을 마감하면서 짧은 시간동안

써내려간 안의사의 동양평화론은 미완으로 남게 되었다.

 

    백척간두에 선 국가의 운명에 미래를 알 수 없이 내던져진 국민은

이른바 위정자를 자처한 자들에게 신랄하게 묻고 싶다.

불과 115년전 안중근의사가 설파했던 바

"용공난용 연포기재( 庸工難用 連抱奇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