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대전 서구 둔산대로157,이응노 미술관
여행일시:2025,03,01,12:30~14:00
여행인원: 아내와 둘이서
여행소감: 대전 한밭 수목원 근처의 이응노 미술관은
최근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전시가 끝난 이건희 컬렉션에
전시된 작품의 연장선상에서 이응노 화백의 작품들을
더 감상해 볼 겸 찾았다. 한국의 근 현대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고암선생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 만으로도
행복한 일이거니와 근 현대 여류 미술작품들을 함께
한자리에서 볼 수 있음에 평택 거주지에서 대전까지
한달음에 달려나간 마음은 이미 미술관에 도착한 후였다.
아래 주석은 이응노 미술관 해설을 참조하였다.
2007년 5월에 대전광역시 현재의 장소에 개관하였다.
이응노 미술관은 프랑스 출신 건축가
로랑 보두엥(Laurent Beaudouin 1955~)이
고암의 문자추상 작품<수(壽)>을 건축적으로
해석하고 상징화하여 만들어졌다.
2007년 준공을 기념하는 표지석.
생전의 고암선생(1904~1989)의 모습
이응노 미술관 전면, 대전 시립미술관 옆에
함께 나란히 서있다.
동서양 미술을 독특한 방식으로 접목한
죽사(竹史) 선생은 한국 근, 현대사의 질곡을
따라서 그의 예술의 혼도 함께하고 있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고암선생의 7,80년대 <군중>은 역동적인 시대적 배경을
또 다른 변화의 모티브로 사용하였다.
80년대 평화와 반전,반핵의 추구가 시대적 역동성을
사람을 통하여 구현해 내고 있다.
대나무에 군상의 조화로운 접목은
획기적이라 할 만하다.
고암 선생과 직,간접적인 예술적 연관성이 많은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가졌다.
![]() |
![]() |
천경자,<아열대2>,1978,가나문화재단 소장
<영모도>,연도미상, 8폭병풍,가나문화재단 소장
천경자, <소녀>,1960년대, 가나문화재단 소장
천경자,<누가울어 2>,1989,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금동원, <세검정>, 1985,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금동원, <세검정 풍경> 1948,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금동원, <오대산 근처>, 1970년대,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심경자,<가르마>,1989, 종이에 수묵담채,콜라주
리움미술관 소장
박인경은 고암선생의 2번째 부인으로 동반자이자 제자로
수묵추상화등 작품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최성숙,<빛나는 아침>,,1984, 캔버스, 먹, 아크릴릭 채색
최성숙,<추산동의 가을>, 1985,
황화선지, 먹, 동양화 채색
![]() |
![]() |
김순련, <수족관>,1972, 캔버스에 유화
<복숭아>, 2005,캔버스에 유화
![]() |
![]() |
![]() |
<낙동강>,1930년대,가나문화재단 소장
시흥<녹동서원>,1934,가나문화재단 소장
<나부상>,1928,수원시립미술관 소장
최성숙,<뒷모습의 여인>,1982,
박래현,<생>,1971, 동판화,수원시립 미술관소장
문의희,<고뇌>,1995, 종이에 수묵, 개인소장
문은희,<윤회>.2010, 종이에 수묵, 개인소장
문은희, <자유>, 2005, 종이에 수묵, 개인소장
박래현,<여인과 고양이>,1959, 종이에 먹,색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박래현,<작품16>, 1968, 종이에 채색
가나문화재단 소장
박래현,<작품1>,1965, 종이에 수묵,채색
가나문화재단 소장
김윤신,<무제>, 1964, 종이에 잉크 드로잉
김윤신, <무제>,1964, 종이에 잉크 드로잉
김윤신,<소나무>, 1979, 나무조각
조선 황실 황태자의 스승이었던 해강 김규진을 만나서
그림에 입문하여, 스승인 해강에게서 받은 죽사( (竹史)를
호로 사용하였고, 1924년 당시 <조선미술전람회>에
대나무 그림을 출품하여 입선한 이후 사군자 작가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 하였다.
1926년 한국전통미술의 맥을 잇는 전주에서 당시 유명
서예가,동양화가등과 교류와 "개척사"라는 화랑등을
운영한 경험이 프랑스등 유럽에서의 활동에서
그의 작품에 영감을 불어넣는 전통적 근원이 되었다.
1936년 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일본화의 대가인
마츠바야시 게이게츠에게 사생을 바탕으로 한 사실적인
회화기법을 배웠다. 사군자를 주로 그리던 그가 일본 유학시
수채화,서양식 풍경화등도 그리며 작품세게의 경계를
넓혀가면서 고암(顧庵, 顧菴)이란 호를 새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서울 남산 기슭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여'고암화숙'이란 화실을 열어 젊은 동양화가들을
교육하는 한편, 삶의 애환이 깃든 사람들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미술을 추구하던 고암선생은
1958년 12월 26일, 부인 박인경,아들 이융세와 함께
유럽으로 떠나서 1962년 콜라주 작품들을 출품한
파리에서의 첫 개인전이 대성황을 이루어 그 명성을
알렸다.
첫 개인전이 열린 파케티 갤러리는 잭슨 폴록
(Jackson Pollock)을 프랑스에 처음 소개한 데
에서도 알 수 있듯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앵포르멜(Informel)'과'서정추상(Abstraction Lyrique)
이라는 유럽 전위 미술 운동을 주도하는 갤러리였다.
유럽에서 각광을 받던 죽사 이응노는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한국으로 송환된 후
수감되었다. 한국전쟁 중에 납북된 아들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에 동베를린을 방문했으나 만나지 못했던
사실이 빌미가 되어 한순간에 생의 밑바닥으로 떨어졌지만
그는 300 여점에 달하는 '옥중작'을 제작했다. 재료는
도시락통,부채,밥풀,간장 등이었다. 죽사는 서대문구치소,
대전교도소,안양교도소를 거치며 1년 8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견디었고, 유럽의 많은 미술평론가, 미술관장,동료작가등이
석방탄원서를 한국정부에 제출하며 구명운동을 벌였고
결국 1969년 출소하여 프랑스로 돌아가게 되었다.
고암 이응노 미술관 옆 대전시립미술관은
나란히 짝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