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여는 여유

운현궁에서

사색의 산책 2022. 7. 11. 01:25

     대원군(大院君)은 생전에 자신은 왕이 되지 못하였지만, 자식은 왕이 된 경우에

칭하는 말인데 조선의 시기에는 4명의 대원군이 있는데 선조의 아버지 덕흥군,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 철종의 아버지 전계군, 그리고 12살에 왕위에 오른

명복(命福, 개똥이)이는 고종의 이름인데 흥선대원군은 살아있을때  아들이 왕이 된

즉 아버지가 죽은 후에 추존이 된 3명의 경우와는 다르게 흥선군만 생전에 아들이

왕이되어서 당시에 세도가들인 안동김씨인 김조순,김좌근등에 있던 권력을 왕권으로

가져오는 역활의 선봉에 선 그 중심에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李昰應)이 있었다.

 

    운현궁(雲峴宮)은 안국역 근처인 종로구 운니동 114-10 소재지에 있는데 이곳에서

자신의 둘째아들이자  조선 26대 왕이 된 고종(명복)이 태어난 장소이거니와

1882년 임오군란 후 민비의 요청으로 청나라 천진(텐진)으로 납치당한 후 1885년 8월

청나라와 일본의 밀의로 흥선대원군은 운현궁에 사실상 유폐된다.

1863년 고종이 왕위에 오르고 섭정을 시작한 후 10년여 동안 왕권강화등을 통하여

국내정치를 개혁하여 서원철폐및 세재제도및 군사,정치 각분야에 걸쳐 변화를 꾀하였으나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를 판단하는데 실패하고 열강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일본의 야욕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모를 겪어내야만 하는  그 중심에 쇠락해가는 운현궁이 있었다.

 

    운현(雲峴)은 기상관측을 맡아보던 서운관(書雲觀) 앞의 고개이름인데

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이어서 운현궁이라 하였다. 

일제 강점기인 1912년에는 르네상스 양식의 프랑스풍 운현궁 양관(洋館) 을 지었는데 

현재는 덕성여대 종로캠퍼스로 덕성여대에서 평생교육원으로 사용하고 있고,

   고종즉위 후 운현궁은 그 크기가 상당히 넓어져서 창덕궁과 이어진 규모로 커졌고

운현궁에서 창덕궁으로 고종과 흥선대원군이 쉽게 드나드는

경근문/공근문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흥선대원군은 자신의 둘째 아들 명복이를 사가에서는 개똥이라고 바꿔부르고 자신은 상갓집 개처럼

안동김씨 가문에 밉보이지 않기위한 노력을 한다.  친척 왕족인 이하전이 철종에게

"이 나라가 안동김씨의 것 입니까? 전주이씨의 것 입니까?" 라고 말한것이 화근이 되어

당시의 김좌근등 안동김씨 세력에게 역모로 연루되어 제주도에서 사약을 먹고

1862년 21세의 나이로 사사되는 일이 있었고, 이러한 안동김씨 세도의 중심에는

순조의 장인인 김조순이 딸인 순조의 비 순원왕후가 있었고, 정조가 죽고 어린나이에

왕위에 오른 순조를 측근에서 보필하면서 김조순의 세째 아들인 김좌근이

영의정을 3번이나 지내는등 철종대에 그 세도가 절정에 달하지만,

흥선대원군과의 사이는 좋은 편이었다. 흥선군 이하응이 이른바 저자거리의 상갓집 개,

혹은 파락호 같은 행동을 하면서 술에 취해서 하옥대감(김좌근)의 집을 찾으면

항상 왕실 종친의 대우를 해주었고 이로인하여 1863년 흥선대원군이 집권 후 안동김씨가

숙청 당할때에도, 김좌근 본인은 물론 그의 자손들까지도 보복 당하지 않은 것이다.

 

 

 

흥선대원군,이하응(興宣大院君, 李昰應)의 초상

 

 

대원군은 석란도(돌위에 난을 그림)등을 잘 그린것으로도 알려져있다.

파락호시절엔 석란도를 그려서 술값으로 주모에게 주었다고 한다.

1967년 상,중,하 3권으로 나온 유주현씨의 장편소설 <대원군>에서는 이른바

상가집 개,혹은 파락호같은 생활을 하며 기방에서 기생 추선이의 가랭이 사이를

무릎꿇고 기어서 지나는 장면등이 묘사된다. 왕가의 종친인 흥선대원군의

이러한 행동은 자신의 아들인 명복(개똥이)이를 왕위에 무사히 올리기 위한 전략적인

포석이었다.

 

 

운현궁에 소속된 둔토의 소재,등급,면적,소유주 등을 기록한 양안

 

 

 

운현궁의 전체 모형

사랑채인 노안당, 안채인 노락당과 이로당, 경위업무를 보던 수직사와 행랑채 가운데는 유물전시관 모형.

 

 

 

    석란도를 잘 그린 흥선대원군이 사용하던 벼루,먹,연적,붓의 모조품

실제 유물은 서울 역사박물관에 전시 되어있다.

 

 

 

 

    교지함, 주칠한 나전칠기 함,  자개쟁반과 목각쟁반등

 

 

 

명성왕후와 고종이 가례시 착용한 예복으로 명성왕후의 홍색적의와 고종의 현색면복

1866년(고종3년)에 고종과 명성왕후는 노락당에서 가례를 올렸다.

 

 

 

    부대부인 여흥민씨의 녹색원삼   흥선대원군의 적색조복등도 역시 가례시 착용한 예복이다

 

 

 

    이로당과 노락당은 안채로 사용되었고  노안당은 운현궁의 사랑채로 흥선군의 주요거처로 사용되었다.

노안은 <논어>가운데 '노인을 공경하며 편안하게 한다.'는 뜻에서 왔다고 하며  노안당과 노락당은

1864년(고종1년) 3월에 상량하고 같은 해 완공하였다.

정면 6칸에 측면3칸으로  평면은 T자형으로 온돌방과 마루로 실내를 구성하고

누마루(지면보다 높게 띄어 마루를 깐 구조) 인 영화루를 달아냈다.  굴도리를 쓴

민도리집(기둥머리에서 보와 도리가 직교하면서 짜이는 구조로 단면 모양에 따라

원형은 굴도리, 방형은 납도리)이다. 공간구성과 견실한 목조구조가

세부기법은 궁궐에 버금가는 품격이다.

 

                                                                                                                                  운현궁 설명...인용함

 

 

화조도와 교지,노락당 상량문등

 

 

 

 

운현궁의 유물전시관의 유물등은 모조품이고 실제 유물은 서울 역사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안채인 이로당의 뒷편 모습  1869년(고종6년) 지어진 이로당은 별채로서 노락당과 함께 또다른 안채의

역활을 하였다. 이로당은 극히 내밀한 ㅁ자형 구조로 안채인 노락당에서 복도로 연결되었다.

 

 

 

 

    이로당의 앞쪽모습, 이로당은 1869년(고종6년)에 완공된 건축물로  이로는 부대부인 여흥민씨와

흥선대원군 2명을 뜻하는 것으로 정면7칸,측면7칸이고 평면은 ㅁ 자형인 안채건물이다. 

이로당의 편액은 노안당 편액과 마찬가지로 추사선생의 글씨를 집자한 집자본의 모각본으로

원본은 서울 역사박물관에 있다.

 

 

 

 

당초문이 아름다운 노락당과 이로당을 연결하는 문을 지나면 이로당의 후원으로 들어선다.

 

 

 

안채인 노락당은 고종과 명성왕후의 가례를 가진 곳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부대부인 민씨가 생활한

내밀한 공간으로  운현궁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노락당의 뒷편인 굴뚝과 멀리 1912년 르네상스식으로 지은 양관(洋館:현 덕성여대 종로캠퍼스)도 보인다.

 

 

안채인 노락당 내밀한 공간의 일상 모습

 

 

 

 안채인 노락당은 정면10칸,측면3칸으로 평면은 ㅡ자형인데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온돌방을,

앞뒤로는 툇간을 둔 궁궐내전의 평면구성을 보인다. 복도각을 통하여  이로당까지

이어지게 한 방식은 운현궁의 특색으로 노락당은 운현궁 안에서 유일하게 기둥머리에

익공(새 날개 모양으로 뾰족하게 생긴 공포의 일종)을 장식하여 가장 높은 위계를 드러낸다.

여러 세부 기법은 조선말기 궁궐 건축에 버금가는 수법으로 손꼽힌다.

 

 

1866(고종3년) 고종과 명성왕후는  이곳 노락당에서 가례를 올렸고, 노락당의 편액은

신헌(申櫶, 1810년 ~ 1884년,후에 이름을 신관호(申觀浩)에서 신헌으로 개명)이 섰다 하는데

추사선생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흥선대원군이 주로 거처로 사용한 곳인 사랑채. 

 

 

 

 

 

서울 교동초등학교는 서울 종로구 경운동에 있는 공립초등학교로 1894년 황실 자녀에게

신교육을 가르치는 관립 교동 소학교로 개교 하였고  1895년 4월 한성사범학교 부속소학교로

개편되고 현재의 위치에 이전하였다. 1996년 서울교동초등학교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

운현궁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가장 나이가 많은 초등학교(118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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