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여는 여유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을 찾다

사색의 산책 2017. 11. 22. 15:30

    여행지: 충남 예산의 추사 김정희 선생의 고택

    여행일자: 2017,11,21,화요일 오후  

   

    200 여년의 세월을 담아 秋史 김정희(金正喜) 선생을 뵙다.

    조선 정조에서 철종년간에 조선 최고 명필이면서

    서체의 독특한 경지에 이른 추사체를 창안하여 당대및 후세

    청나라의 문인들까지 칭송한 완당의 고택에서  삶의 향기를

    한껏 담아보았다.

 

 

 

 추사고택의 입구

추사고택은 완당선생의 증조부,김한신(金漢藎)이 18세기 중엽에 건립한 53칸 규모의 전형적인

중부와 영남지방에서 볼 수 있는 'ㅁ'자형 양반 대갓집 형태이다.

 

 

歲寒圖,국보 제180호인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주도에서 9년간 귀양살이 하는 동안에 제자인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이 정성을 다해 청나라 연경에서 구해온 책을 보내주는 등 사제의

의리를 지켜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세한송에 비유하여 그려준 명작이다.

 

 

 

    추사고택의 사랑채는 바깥 솟을대문을 들어선 마당에 자리잡은 'ㄱ'자형 집으로

 위쪽의 안채와 확연히 분리된 형태인데 유교적 관념에 의한 당연한 구분개념을 보여준다.

이 사랑채는 남쪽의 한 칸,동쪽에 두 칸의 온돌방과 나머지는 대청과 마루공간으로

 비교적 넓은 규모이다.

 

 

 

  뒤쪽에서 본 안채는 6칸의 대청과 2칸의 안방,건너방,부엌,다락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당채에 모셔져있는 추사선생의 영정은 친우인 권돈인이 추사의 제자 이한철에게 시켜

    그리게 하였다.

 

 

    추사영실, 추사의 친우인 이재(彛齋) 권돈인(權敦仁)이 그 현판을 썼다.

 

 

    마당에서 본 안채

 

 

    마당에서 본 사랑채

 

 

 

 

    사랑채 전경과 앞의 댓돌앞에 세워진 돌기둥은 해시계 받침용도로 사용되었다.

담장옆의 살구나무는 아마도 추사가 어린시절에도 그 자리에 있었을 듯 합니다.

 

 

 

 

 

 

 

 

    추사선생의 탄생관련 이야기가 전해오는 우물

 

 

 

 

    우물은 추사고택의 바로 옆문으로 연결된다.

 

 

 

    추사 기념관 바로 앞의 추사선생 상

 

 

    추사고택은 문간채와 사랑채,안채,사당채로 이루어져있다.

 

 

    추사의 스승으로 알려진 청나라 완원(阮元)

 

 

    추사선생의 영정,금란지교의 친우인 권돈인 작품


 

 

 

    1836년에 申翠微太史暫遊詩帖(신취미태잠유시첩)에 실린 10편의 시 가운데 추사의 작품

 

    역시 같은 시첩에 있는 친우인 권돈인의 시


 

 

 

    금석학과 고증학의 대가인 추사선생의 학문적 깊이를 가늠 해 본다

 

 

 

 

 추사가 그린 봄에 피어난 란,추사의<蘭盟帖>상권 2째 폭에 실린 蕙草와 역시 상권 1째폭에 실린

 겨울에 눈보라를 이겨내고 핀 난화  ......간송미술관 소장

 

 

 

 

 

 소림모정(疏林茅亭)은 산과 강이 어울린 강안의 성긴 숲속의 띠풀 지붕의 정자를 그린 것이고

세외선향(세외선향)은 역시 난맹첩 11면에 실린 지초와 난초를 함께 그리는 <지란병분도>이다. 

 


 

 

 

    高士逍遙(고사소요)는 추사의 문인화 중에서 인물이 그려진 유일한 작품으로 뜻 높은 선비가

    사색에 잠긴 채 오솔길을 거니는 모습을 그렸다.

 

 

묵소거사자찬(默笑居士自讚)은 추사의 해서 중 대표작으로 황산 김유근이 자찬(自讚)한 것을 절친한 벗

이었던 추사가 써준 것으로 묵소거사는 김유근이 실어증에 걸려있을 때 지은 호인데 침묵을 지켜야 할 때

침묵을 지키고 웃어야 할 때 웃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래 추사의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해 봅니다.

 

   

 

 

 

 

 

 

 

 

 

 

 

 

 

 

    완당선생과 이재(彛齋) 권돈인(權敦仁)과의

우정에 비견되는 바 초의선사(草衣禪師)와의 막역지우(莫逆之友)가 생각나게 하는 초의선사가 스스로 만든 차를

추사선생에게 보내왔는데  1786년생 동갑내기 친구인 추사와 초의선사는 자주 초의선사에게 차를 만들어

보내달라고 재촉 할 정도로 친한 친구 사이였다.  제주 대정읍에 추사가 유배 되었을 때 초의선사가 유배지인

제주 대정읍까지 찾아가기도 하였다.

 명선이란? "차를 만드는 선승" 혹은 "차를 마시며 선정에 들다"라는 의미이다.

 

 

 

     해남 대흥사의 초의선사 상  

 

 

 

 

  

 

 

 

 

 

 

 

 

 

 

 

 

 

 

 

 

 

 

 

 

 

 

 

 

 

추사선생의 삶에 대한 생각을 엿보는 또 다른 글이 있다

유재(留齋)

留不盡之巧以還造化

留不盡之祿以還朝廷

留不盡之財以還百姓

留不盡之福以還子孫

 

    유재는 추사선생의 제자인 남병길(1820~1869)의 호이다. 선생이 제주 대정읍 유배시절에 쓴

예서체의 현판글이다. 글의 내용은 기교를 다하지 않고 남겨서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고,

녹봉을 다하지 않고 남겨서 조정으로 돌아가게하고, 재물을 다하지 않고 남겨서 백성으로 돌아가게 하고

복을 다하지 않고 남겨서 자손으로 돌아가게 한다.  완당이 적다.

 

 

 

 

 

 

 

 

 

 

 

 

 

 

 

 

 

 

 

 

 

 

 

 

 

 

 

 

 

 

 

 

 

 

 

 

 

 

 

 

 

 

 

 

 

 

 

 

 

 

 

 

 

 

 

 

 

 

 

 

 

 

 

 

 

 

    추사의 묘지는 추사 고택 바로 옆에 있다.

세한도에서 등장하는 소나무의 모습들이 선생의 옆을 바로 지키고 있다.

선생의 절친인 권돈인,김유근 선생들과 수많은 제자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