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영주 기자
#관광이 아닌 미지세계 모험
백룡동굴의 가장 안쪽, 종유석·석순·석주가 한데 어울려 대형 광장을 이루고 있다. | |
동굴 입구는 동강이 끼고 도는 절벽 위에 뚫려 있다. 예전에는 작은 배를 타고 이동했지만 개방을 앞두고 평창군은 동굴로 가는 진입로를 만들었다. 절벽 옆으로 철제 기둥을 세우고 그 위로 나무계단을 설치했다. 약 300m 길이다. 강 건너편에 있는 정무룡씨 집에서 바라보면 히말라야 오지에 놓인 현수교처럼 아슬아슬하다. 동굴 가는 절벽 절개지에는 동강 지역에서만 자라는 동강할미꽃과 토종 민들레가 한창이다. 동강할미꽃은 20일께까지, 토종 민들레는 다음달 말까지 구경할 수 있다.
굴 입구에서 복장을 다시 점검했다. 방수가 되는 원피스형 동굴 체험 복장을 하고, 신발은 장화를 신어야 한다. 굴 안에 무릎까지 차는 수로가 있기 때문이다. 안전모는 필수. 막장 지역을 제외하고 굴 안에 조명시설이 없기 때문에 헤드랜턴을 켜야 한다.
드디어 진입. 이무열씨가 “갑자기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면 눈에 무리가 오기 때문에 천천히 진입해야 한다”고 주의를 준다. 입구에 반석과 황토로 만든 구들장이 보인다. 연대는 확실하지 않지만 예전에 사람이 들어와 머물렀던 흔적이다. 입구에서 몇 발짝 들어가자 동굴 천장에 붙은 박쥐 몇 마리가 보인다. 관박쥐. 날개를 접고 벽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모양이 왕관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예전엔 흔했다지만 지금은 동굴 안을 다 뒤져도 10마리나 될까 싶다. 박쥐는 랜턴 불빛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단다. 마냥 신기할 따름이지만 최대한 빨리 지나치는 게 박쥐에게는 덜 미안한 일이다.
100m쯤 전진하자 수로가 앞을 가로막았다. 폭이 3m는 될까. 걱정했던 것보다 차갑지는 않았지만 물이 무릎까지 차올랐다. 물이 흐르는 동굴은 살아 있는 동굴이다. 현재 백룡동굴 주 통로에는 동굴수가 흐르지 않으며, 동굴 바닥 밑으로만 물이 흐르고 있다. 동굴이 성장을 멈추고 노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수로의 물은 여름철에 범람하는 동강의 물이 유입된 것이다.
#개구멍 빠져나오니 별세계
동굴수로 인한 석회암의 침식작용으로 굴 바닥이 물결무늬를 이루고 있다. | |
이무열씨가 설명을 마치고 먼저 구멍 안으로 몸을 들이민다. 길이는 짧지만 메고 있는 배낭을 벗어야 할 만큼 비좁다. 낮은 포복 자세로 기어 들어가야 한다. 우리 일행 중 가장 건강한 체격이어서 들어가는 게 영 버거워 보인다. 하나 동굴 탐사 경력 10년의 베테랑답게 요령껏 잘도 빠져나간다.
구멍을 빠져나오니 별의별 모양의 종유석과 석순, 석주 등 동굴 생성물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막대기형 석순은 가장 흔한 형태의 동굴 생성물이고, 피아노·오르간 모양을 한 피아노형 종유석은 괴수 영화에 나오는 징그러운 괴물을 닮았다. 비슷한 형태로 한 폭의 폭포를 연상시키는 유석(流石)도 있다.
윗면 천장이 평평한 형태를 보이는 동굴 방패는 외국에서는 드문 생성물이지만 우리나라 동굴에서는 흔하다. 길이가 수미터(m)에 달하는 대형 석주 또한 보기 드문 형태다. 보통 동굴 생성물은 1년에 몇 밀리미터(㎜)밖에 자라지 않는다. 백룡동굴의 수령을 4억~5억 년으로 추정하는 이유다.
뱀의 모양을 한 동강의 물줄기. 백룡동굴이 있는 백운산 오르는 길에 전망대가 있다. | |
동굴의 갖가지 생성물은 석회암·물·이산화탄소에 의해 생겨난다. 지상의 빗물이 작은 틈을 통해 동굴 안으로 스며드는데, 지하로 들어가면서 이산화탄소를 함유하게 된다. 이 지하수가 동굴 벽면과 천장에서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고, 종유석과 석순 등이 만들어진다. 물이 흘러 위에서 아래로 자라는 건 종유석이고, 밑에서 위로 자라는 건 석순이다. 종유석은 물이 흘러내리면서 형성돼 끝이 뾰족하고, 석순은 물이 떨어져 내리면서 형성돼 끝이 둥글다. 이무열씨의 열띤 설명을 듣고 있으니 중학교 과학 시간에 이미 배웠던 내용이다. 다시는 안 잊어 먹을 것 같다.
#완벽한 어둠 속에 서다
동굴체험 중에는 동굴수가 흐르는 수로를 건너기도 한다. | |
동굴의 끝까지 도착했다. 이무열씨가 “다들 랜턴을 꺼 보라”고 말한다. 하나 둘씩 불빛이 사라지자 절대 암흑이 찾아왔다. 손바닥을 눈앞에 갖다 대도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다. 동굴 체험의 묘미가 바로 이런 것이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절대 고요를 느낄 수 있는 시간. 그렇게 몇 분을 보냈다.
갑자기 불이 켜졌다. 통로에는 조명시설이 없지만 동굴이 끝나는 광장에는 은은한 조명 몇 개를 설치해 놓았다. 동굴의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유럽의 동굴 전문가를 초청해 작업했다. 거대한 광장은 온갖 동굴 생성물의 종합선물세트였다. 머리를 뒤로 젖히고 한참을 쳐다봤다. 황홀했다.
예정된 탐사 시간은 2시간이었지만 어찌하다 보니 5시간이나 돌아다녔다. 동굴 밖으로 나오는 길. 어둠의 끝에서 반짝이는 한 줄기 빛이 너무나 반가웠다.
토종 민들레(왼쪽), 동강할미꽃(오른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