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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謙齋)정선(鄭敾) 호암 미술관

사색의 산책 2025. 4. 20. 16:28

    호암과 간송의 협업으로 이뤄낸

진경산수화 대가 겸재(謙齋)를 만나다.

  여  행  지:용인 호암미술관(湖巖美術館)

  여행일시:2025,04,20(일요일),09:30~11:30경)

  여행인원: 아내와 둘이서

  여행목적:

조선후기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대가

겸재 정선(1676년 ∼ 1759년)의 작품인

인왕재색도,금강전도등을 만나러

호암미술관과 대구 간송미술관이 협엽한

문인화가 겸재의 작품 세계를 한곳에서

감상하는 심안의 호사를 한껏 누리는

기회에 18세기 우리 산하의 실경을 담아 낸

겸재의 작품은 시대를 초월한 큰 울림으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호암미술관에서 겸재 정선의 작품들과

지금은 볼 수 없는 금강산의 다양한 풍광과

대면하면서 조선 예술가의 수준을

감히 상상해 볼 소중한 기회가 되었고

겸재와 사천 이병연(李秉淵:1671년~1751년)이

경교명승첩(鄭敾 筆 京郊名勝帖:1740~1741)

에서 보여주는 두사람의 관계는

시중유화 화중유시(詩中有畵 畵中有詩)

'시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속에 시가있다.'라는

그들만의 독특하고 진한 평생동안의 우정이

감동적인 명작들을 만들어냈다.

 

     시화환상간도(詩畵換相看圖),겸재 정선,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상투차림으로 격식을 갖추지 않았지만

두 무릎을 얌전히 모은 노인이 겸재로 추정된다. 

 

      그림의 좌측 노인이 사천(71세),

시를 듣고있는 우측 노인이 겸재(66세)

 

내 시와 자네의 그림을 서로 살펴보고자 교환함에

어느것이 가볍고 무겁다고 어찌 말로 논하는 가

 

아시군화환상간(我詩君畵換相看)

경중하언논가간(輕重何言論價間)

 

시와 그림을 통해 사유까지 함께 하고자 했던

사천과 겸재의 우정에 저절로 옷깃을 여민다.

 

 

 

출처표시는 호암미술관 해설,국립중앙박물관 해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의 설명 참조

                 

                  

   솔향이 4월 햇살아래 경내에 살포시 머문

아침 호암미술관에서......

                         

                        

   

 

    출처:2017년 10월27일 국가유산청, 「정선 필 해악전신첩」

등 11건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 예고

「정선 필 해악전신첩(鄭敾 筆 海嶽傳神帖)」

은 1747년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대가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이

금강산 경치를 21폭에 담아낸 화첩이다.

보물 제1875호로 지정된 정선의 <풍악도첩>과

더불어 18세기 금강산 그림을 대표할 만한

학술적․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작품이다.
  * 해악전신(海嶽傳神): 산천 지형의 모습을

뛰어난 필치로 구현했다는 의미
  *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 우리나라의 실재 장소를

그린 그림으로, 조선 18세기 이후 유행

 

  「정선 필 경교명승첩(鄭敾 筆 京郊名勝帖)」은

1741년 그리기 시작해서 정선이 사망한 1759년 경

완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화첩으로, 서울 근교와

한강 변의 명승지를 담은 진경산수화이다.

정선이 교류한 조선후기 대표 시인 이병연

(李秉淵, 1671~1751)의 글이 함께 수록되어

시와 그림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서울 근교의 명승지를 산뜻한 색감과 차분한 분위기로

그려냈으며, 청록채색법을 적용한 정선의 대표작이다.
  * 경교명승(京郊名勝): 서울(京)과 서울 밖(郊)의 명소

 

  「정선 필 풍악내산총람도(鄭敾 筆 楓嶽內山總覽圖)」

는 정선이 60~70대에 이른 1740년대 그려진 작품으로,

가을날 금강산의 절경을 1폭의 화면 안에 표현한 작품이다.

짜임새 있는 구도와 사물을 선명하게 묘사한 꼼꼼한 필치,

능숙한 필선 등 만년에 이른 정선의 무르익은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녹색, 황색, 적색 등 다양한

채색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가을의 내금강 모습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다른 금강산도와 차별되는 작품이다.

국보 제217호로 지정된 정선의 <금강전도>와 비교해 보아도

예술적 가치에 있어 손색이 없다.
  * 풍악내산총람(楓嶽內山總覽): ‘풍악’은 금강산의 별칭.

내금강의 산세를 한눈에 본다는 의미

 

  「정선 필 청풍계도(鄭敾 筆 淸風溪圖)」는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대표하는 또 다른 작품으로 2m에 가까운 대작이다.

1739년 당시 64세이던 정선이 안동김씨와의 친분으로

서울 백악산 청풍계에 있던 안동김씨 김상용(金尙容, 1561~1637)의

고택을 그린 그림이다. 개성적인 화풍과 대가로서의 기량이

잘 발휘된 작품으로 역동적인 구성과 조형 감각, 자신감 있는

필묵(筆墨)의 구사 등 정선 진경산수화를 대표할 만하다.

 

  「정선 필 여산초당도(廬山草堂圖)」는 지금까지 알려진 정선의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 중 규모와 표현에 있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히는 그림이다.

여산(廬山)은 중국 강서성에 있는 명산(名山)으로,

이 그림은 여산에 초가집을 짓고 은거한

백거이(白居易, 772~846)의 고사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우리나라의 실물이 아닌 관념 속 산수를 그렸음에도

정선이 진경산수화에서 즐겨 다룬 개성적인 필묵과

남종화풍(南宗畵風)을 잘 절충하여 조선 후기 산수화의

또 다른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주로 수묵을 즐겨 사용한 정선의 화법과 달리 짙은

채색화로 제작했다는 점에서 희소성이 높다.
  *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 신화나 역사상의 특정 인물과

관련된 일화들을 주제로 하여 그린 인물화
  * 남종화(南宗畵): 문인이나 사대부가 애호한 문인화의 일종.

수묵 위주의 소략하고 담박한 표현이 특징이며,

역대 남종문인화가들에 의해 창시된 구도와

경물표현을 차용해 그린 그림을 의미하기도 함

 

    출처:겸재 정선 필 지정된 문화재는 12건(호암미술문화재단)

1. 국보 제216호 정선 필 인왕제색도 1축 1984.8.6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2. 국보 제217호 정선 필 금강전도 1축 1984.8.6 삼성리움미술관 소장

3. 보물 제873호 정선 필 육상묘도 1축 1986.10.15 대구 개인 소장

4. 보물 제1796호 정선 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 1첩(16폭) 2013.2.28 개인 소장

5. 보물 제1875호 정선 필 풍악도첩 14폭 2015.4.22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6. 보물 제1949호 정선 필 해악전신첩 1첩(38폭) 17.12.26 간송미술관 소장

7. 보물 제1950호 정선 필 경교명승첩 2첩(상 20폭, 하 22폭) 17.12.26 간송미술관 소장

8. 보물 제1951호 정선 필 풍악내산총람도 폭 17.12.26 간송미술관 소장

9. 보물 제1951호 정선 필 청풍계도 1폭 17.12.26 간송미술관 소장

10. 보물 제1951호 정선 필 여산초당도 1폭 17.12.26 간송미술관 소장

11. 보물 제1951호 정선 필 북원수회도첩 1첩 24.6.2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2.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 제202호 정선 필 청풍계지각 1점 19.4.10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소장

녹색으로 표시된 문화재 8건이 전부 또는 일부 출품.

참고:

겸재정선화첩(謙齋鄭敾畵帖)
겸현신품첩(謙玄神品帖)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
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
조운탁 기탁본 <금강산>
사계산수도첩(四季山水圖帖)
사공도시품첩(司空詩畵帖)
소상팔경도첩(瀟湘八景圖帖)
신묘년 풍악도첩(辛卯年 楓嶽圖帖)
심사정·정선·최북 합벽첩(沈師正·鄭敾·崔北 合壁帖)
연강임술첩(漣江壬戌帖)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
정선 등 산수인물화첩(山水人物畵帖)
정선 등 선면화집(扇面畵集)
정선등필 선면화첩(鄭敾等筆扇面畵帖)
정선등필 소품화집(小品畵集)
퇴우이선생 진적첩(退尤二先生眞蹟)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

(鄭敾筆 海嶽八景 및 宋儒八賢圖 畵帖)
화훼초충영모화 8첩(花卉草蟲翎毛畵 八帖)

       호암미술관 

  조선후기 진경산수화와 문인화,화조영모화등의

대가인 겸재 정선을 이곳 호암미술관에서

2025,4,2~동년,6,29까지 만날 수 있다. 

 

 

 

 

   1997년 5월에 개원한 전통정원 희원은

벛꽃이 만개하는 4월초순경에는

무릉도원의 모습을 연출하는데 아쉽게도

벛꽃의 축연은 이미 끝난 후였다.

 

 

   겸재의 (인왕제색도: 鄭敾 筆 仁王霽色圖, 1751년 5월 하순경)

종이 바탕에 수묵 담채화. 국립중앙박물 소장,정선이 75세에 그린 작,

비온 후의 인왕산 전경을 묘사한 진경산수화, 1984년 8월6일

국보 제216로 지정됨, 60년지기 친구인 시인 이병연의 병이

쾌차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그렸으나  그림이 완성된지

4일만에 이병연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심안으로 보고 필로 그려낸 인왕제색도 앞에서

감탄의 마음이 절로 일어나고 있었다.

 

    원래는 영의정 심환지(沈煥之)가 쓴 찬시가 

그림 위쪽에 붙어 있었으나 심환지의 후손이 제수용으로 사용하려

절단 해 갔다고 함.

 

 

 

    금강전도(金剛全圖:1734년, 겸재 정선이 59세에

금강내산을 부감형식(俯瞰形式)으로 그린 국보217호로

1984,8,6 지정됨. 삼성문화재단 소장.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금강내산(金剛內山  1747,정선)

    견본담채,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보물

 

    금강내산은 해악전신첩안에 있는 21면중 1폭의 그림으로

겸재가 36세에 내금강총도를 그린 후 1747년(72세) 이 그림으로

완성되었다.

 

 

    출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문헌(최완수 저)

  • ・ 최완수, 『겸재 정선』 전 3권(현암사, 2009)
  • ・ 최완수, 『겸재 정선 진경산수화』(범우사, 1993)

정선 필 「해악전신첩」(鄭敾 筆 海嶽傳神帖) 은 조선 후기,

화가 정선이 1747년에 그린 금강산 일대의 진경산수화 시화첩이다.

정선이 72세 때 그렸으며, 21점의 그림과 함께 스승 김창흡과

벗 이병연의 제화시, 서문, 발문 등 50폭이 같이 장첩되어

당시 문인들의 산수유람, 시화일치의 풍조를 잘 보여주는 명작이다.

 

  해악전신첩은 정선이 72세 때 금강산 일대를 그린

대표적 진경산수화로서, 정선 만년기의 완숙한 화풍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또 그림과 함께 김창흡과 이병연의 발문이 장첩되어

명화가, 대시인의 시화합벽(詩畫合璧)을 이루고 있는 대표적 예이다.

2017년 12월 26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해악전신첩』에는 그림 이외에 이병연의 서문과 홍봉조와

인명 미상인 월남만어(月南晩漁), 박덕재(朴德載)의 발문 등이 실려 있다.

수록된 그림은 21점인데, 순서대로 열거하면 화적연, 삼부연, 화강백전,

정자연, 피금정, 단발령망금강, 장안사비홍교, 정양사, 만폭동, 금강내산,

불정대, 해산정, 사선정, 문암관일출, 문암, 총석정, 시중대, 용공동구,

당포관어(唐浦觀漁), 사인암(舍人巖), 칠성암 등이다.

이들은 모두 금강산과 그 길목에 위치한 명승지들인데,

당포관어와 사인암 두 점은 예외적 성격을 지닌다.

당포는 마포 당인리 근처로 추정되며,

사인암은 단양팔경과 다른 경기도 영평 백운산 근처로 추정되기도 한다.

 

 

    혈망봉( 穴望峯: 정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내금강 일출봉의 서편에 위치한 암봉으로

가운데가 뚫려있어 혈망봉이라 함.

정양사 뒷편의 혈망봉을 그림.

 

    신묘년 풍악도첩(辛卯年 楓嶽圖帖),

단발령망금강산도 (斷髮嶺望金剛山:1711년,정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단발령 고개길에 올라서 금강산을 바라보며 그림.

 

신묘년 풍악도첩(辛卯年 楓嶽圖帖) 겸재가 1711년경 처음으로

금강산을 여행하면서 자신의 감상을 화폭에 담아 내었는데

총 13폭이다.

 

    정양사(正陽寺,정선,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정양사에서 금강산 1만2천봉을 그림'

 

    정양사(正陽寺,18세기 중엽,정선)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불정대:  佛頂臺, 《辛卯年楓嶽圖帖》정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신묘년(辛卯年)『풍악도첩(風樂圖帖)』

중 불정대(佛頂臺) 일대를 그린 그림이다.

내금강 유람을 끝내고 외금강으로 넘어가려면

회양과 고성의 경계가 되는 안문재를 넘어야 하며,

이 고개를 넘어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외다리를

건너야 불정대에 오를 수 있다.

불정대 건너편 외금강 쪽으로 십이폭(十二瀑)이 흐르고

뾰족한 바위 봉우리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아래쪽 해안가로는 외원통(外圓通) 건물이 위치해 있다.

불정대와 천길 절벽을 두고 내금강과 외금강의 경계가

극명하게 구분되는 가운데 외금강의 돌산, 내금강의 흙산,

외원통 주변의 숲이 대조를 이루는 듯 하면서도

조화롭게 표현되었다.

 

 정선 필 해악전신첩 ( 鄭敾 筆 海嶽傳神帖)의 불정대(佛頂臺)

1747년, 정선이 72세에 원숙한 경지로 그려짐.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출처:국립중앙박물관 해설

정선 필 <해악전신첩>은 정선(鄭敾, 1676-1759) 특유의 다양한

필묵법과 옅은 청록색의 선염법이 고른 수준으로 능숙하게 구사되어

금강산의 진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 대표작이다.

정선이 72세가 되는 1747년에 그린 만년작으로,

노년의 무르익은 필치가 집약되어 있어서 금강산 그림 중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총 38폭 중 산수화가 21폭,

나머지는 제목, 서문, 시문, 발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림마다 당대의 명사인 김창흡(金昌翕, 1653-1722)과

이병연(李秉淵, 1671-1751)의 시가 수록되어 있고

장첩 경위를 알 수 있는 서발문까지 갖추어진 화첩으로서

완전성 면에서도 가치를 부여할만하다.

 

 

    금강내산총도( 金剛內山總圖, 《辛卯年楓嶽圖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출처:국립중앙박물관 해설

이 그림은 연대가 밝혀진 정선(鄭敾, 1676~1759)의 작품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인 1711년(36세)에 그려진 것이다.

이 화첩이 제작되게 된 배경은 그의 예술세계를 이해하고 지지하던

사천(?川) 이병연(李秉淵, 1671∼1751)과 관계가 있다.

정선의 나이 35세 되던 1710년에 이병연은 금강산 초입인

김화(金化)에 현감으로 부임하고, 바로 다음해인 1711년에

정선은 금강산을 방문한다. 이때 정선은 백석(白石)이란 아호(雅號)를

가진 인물과 동행하며 13폭의 금강산 일대 경치를 그려

《신묘년 풍악도첩》을 남기게 된다. 금강내산(金剛內山)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그린 듯한 시점으로 포착하였다.

구도적으로는 관찰한 것을 되도록 많이 그려 보여주겠다는

의욕이 앞서서 주객과 강약의 안배가 안 되어 평이하고

산만한 양상을 보이기도 하며, 정선 회화 후기의 과감한

필치보다는 조심스럽고 세심하게 그려졌다.

서릿발처럼 날카로운 봉우리들 때문에 상악(霜嶽)이라고도 불렸던

금강산의 특징을 뾰족한 형태와 흰 채색으로 묘사하였는데,

아직 정선 특유의 힘찬 수직준(垂直?)으로까지는 나아가지 않은

화법 모색기의 양상을 보인다. 산봉우리마다 명칭을 적어놓고

길을 뚜렷이 표시한 것은 조선시대 지도의 영향을 말해준다.

 

 

   장안사(長安寺:정선,1711년,국립중앙박물관소장}

 

장안사는 금강산(내금강) 초입에 자리한 절로서

금강산 일대를 그린 13폭중  1폭으로 초기작이다.

 

 

 

  출전: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정선의 그림 중 최초의 기년작으로 추정되는

신묘년 풍악도첩은 그의 나이 36세 때 그린 것이다.

모두 13첩의 편화와 내력과 화첩 이름을 담은

발문이 1첩으로 돼 있다.

발문에는 1711년에 겸재와 같은 동네(서울 인왕산 자락)에

살았던 백석공(白石公) 신태동(1659∼1729)이

두 번째 금강산 여행을 할 때 정선과 함께 하여

금강산도를 사생케 하였다는 내용이 전한다.

이 화첩에 그려진 금강산은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의

주요 명승을 담고 있으며 금강산의 형세와 특징에 따라

대각선과 원형구도를 적절하게 사용하고,

미점과 피마준, 수직준 등을 다양하게 구사하였다.

특히 금강내산에 묘사된 경물은 중심이 되는 대상을

크게 부각시키고, 빽빽한 구도를 사용하였다.

산봉우리마다 명칭을 적어놓고 길을 뚜렷이 표시한 것은

조선시대 지도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정선의 초기작은 사경산수와

회화식 지도의 전통에 근거하여 마침내 진경산수화라는

새로운 양식을 개척하였음을 말해준다.

 

 

 

    금강대(金剛臺:정선,18세기 중엽),종이에 수묵담채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표훈사 북쪽 만폭동에 있는 돌기둥.

 

  겸현신품첩(謙玄神品帖), 만폭동(萬瀑洞:정선, 18세기)   

  비단에 수묵담채,서울대박물관 소장.

 

 

    표훈사로부터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내금강 계곡

 

     관동팔경도,장안사(關東八景圖: 長安寺,18세기,정선)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관동팔경도(關東八景圖:

,18세기,정선, 백천동(百川洞)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문암관일출,신묘년풍악도첩,정선,1711년

(門巖觀日出, 辛卯年楓嶽圖帖),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출전: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신묘년(辛卯年)『풍악도첩(風樂圖帖)』중 문암산 일출도이다.

사선정도(四仙亭圖)의 오른쪽 위에 작게 그려진 문암의 모습을

확대하여 그린 것이다. 문암(門巖)이란 이름은 돌로 만든 문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졌다.

문암 위에 올라가 동해안의 일출을 바라보는 인물들이 보인다.

 

 

    관동명승첩 의 총석정(叢石亭)   1738,정선,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은 겸재정선(鄭敾)[1676~1759]이

65세 때 그린 관동 지역 명승과 관련된 진경산수화이다.

이 첩에는 정자연, 수태사 동굴, 총석정, 삼일호, 해산정, 천불암,

청간정, 시중대, 월송정, 망양정, 죽서루가 그려져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辛卯年楓嶽圖, 총석정(叢石亭)  ,정선,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신묘년(辛卯年)『풍악도첩(風樂圖帖)』중

통천(通川)의 총석정(叢石亭)을 그린 것이다.

바다로 향한 절벽 위에 총석정이 서 있고

그 옆으로 네 개의 돌기둥이 우뚝 솟아 있다.

건너편에 환성전(喚仙亭), 멀리 묘도(卯島)와

천도(穿島)가 보인다. 보이는 많은 것을 그리려는

의욕에 경물의 비중이 고려되지 않아 평이하게

나열된 감이 있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총석정, 《신묘년 풍악도첩》 (e뮤지엄)

 

 

 

    삼일호(三日湖)18세기 ,정선,

    삼성문화재단 소장

 

 

     시중대(侍中臺),정선,18세기

    삼성문화재단 소장

 

    피금정( 披襟亭, 《辛卯年楓嶽圖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신묘년(辛卯年)『풍악도첩(風樂圖帖)』

가운데 피금정 일대를 그린 그림이다.

금강내산총도(金剛內山總圖)와 달리

비교적 좁은 지역을 그린 대표적 작품이다.

한양에서 시작하여 금강산을 가는 길에는

강원도 철원의 김화(金化)에서

금성(金城)을 거쳐 단발령을 넘게 된다.

이 때 금성에 못 미쳐서 피금정과 마주치는데,

피금정이란 ‘옷깃을 풀어 젖히는 정자’란 뜻을 담고 있다.

금성의 진산(鎭山)인 경파산(慶坡山)을 미법(米法)으로

정성스럽게 꼼꼼히 묘사하여 뒤쪽 배경으로 두고,

완만하게 멀어지는 남대천변을 따라 가로수와 피금정을

화보식(?譜式)으로 담담하게 배치하였다.

고요하면서도 한층 여유를 갖게 하는 느낌을 주고 있다.

 

 

    박생연(朴生淵:박연폭포,18세기), 겸재 정선,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운송정금도(雲松停䔷圖), 겸재 정선,18세기,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구름과 소나무 아래 거문고를 멈춘다.'

    자연과 하나되는 안빈낙도하는 삶의 모습을

    나타냄.

 

    아래는 디지탈기술로 재탄생화 겸재의 작품들을

섬세한 터치로 상세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겸재의 백납병(百納屛) 에 관한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 1713~1791)의 발문

 표암은 발문에서 겸재의 작품들을 평하면서

표암이 그림을 그리면서 쓴 붓이 부덤을 이루었다

하면서 겸재가 그린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극히 일부 소품들을 보고서 겸재의 진면목을 알 수

있겠는가?  겸재의 대작들을 보고 나서야

 그 진가를 알것이라고 겸재를 극찬하고 있다.

 

    문인화가 표암 강세황이 70세에 그린 자화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첫째 폭: 목멱산(木覓山) ,쌍송공정도(雙松空亭圖) ,여산폭포도(廬山瀑布圖)

둘째 폭: 동정추월(東庭秋月) , 수하관폭도(樹下觀瀑圖) , 총석정(叢石亭)

세째 폭: 춘경도(春景圖), 계도(鷄圖) , 독좌도(獨坐圖)

네째 폭: 기려도(騎驢圖), 수하고사도(樹下高士圖), 구담(龜潭)

다섯째 폭: 묘도(猫圖), 책장도(諎杖圖), 독행도(獨行圖)

여섯째 폭: 수하담소도(樹下談笑圖), 동소문(東小門), 소상야우(瀟湘夜雨)

일곱째 폭: 심화춘감도(尋花春酣圖), 약리도(躍鯉圖) , 경복궁(景福宮)

여덟째 폭: 활화풍경(活畵風景) , 망양정(望洋亭) , 강세황(姜世晃) 발문(跋文) 

 

    총 8폭(폭당 3점의 작품)의 병풍중에서

마지막 8폭에 표암 강세황의 발문이 있다.

 

 

    총 8폭 24점의 작품이 있는 겸재의 백납병풍

 

    옥순봉도, 지두산수도 8폭,윤재홍,1833년

    삼성문화재단.

 

 

    김홍도(金弘道, 1745년 ~ 1806년 ?) 의 병진년 화첩,

    1796(보물 781호),영랑호

 

 

    김홍도의 병진년 화첩(보물 781호) ,도담삼봉

 

 

  김홍도의 병진년 화첩(보물 781호) ,사인암

 

 

    김홍도의 병진년 화첩(보물 781호) ,옥순봉

 

 

 18세기,정충엽 (鄭忠燁: 혈성루망만이천봉 ),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백악산(白岳山:북악산,342m),1744년이전

김윤겸(金允謙:1711~177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강전도(김응환:金應煥, 1742년 ~ 1789년) ,1772년, 개인소장

 

 

    노송영지도(老松靈芝圖): 謙齋 鄭敾이 80세인

1755년에 그린 작품,    송암미술관 소장

 

    사직송(社稷松:18세기),정선,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노백도( 老栢圖:18세기) 정선, 삼성문화재단 소장

    수묵채색화

 

 

 

 

 

   초전용서도(草田舂潻圖:정선의 초충도(草蟲圖)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는 꽃,곤충,새,동물등도

세밀히 묘사하여 그렸는 데, 이에는 상징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바, 다산,부귀,장수등을 암시하고

알을 많이 낳는 '방아깨비'는 다산을 상징한다.

 

 

 

    메추라기, 18세기, 정선,개인소장

 

 

    송림한선도(松林寒蟬圖)> _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

 

 

    정선,18세기,다람쥐,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다람쥐의 동적인 움직임을 생동감있게 묘사.

 

 

    정선,18세기,자위부과도(刺蝟負瓜圖:고슴도치가 오이를

등에 이고가는 그림으로 씨앗이 많은 오이는

다산의 상징이 가시가 많은 고슴도치도 다산과

다복의 상징성이 크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요화하마도( 蓼花蝦蟆圖: 정선,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펄쩍 뛰어 오르는 개구리는 입신양명을

상징하는 대상으로 그려진다.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정선,1746년),

    삼성문화재단 소장.

    정선이 퇴계 이황 생존시의 건물인

    도산서원 중심의 풍광을 그린 산수화.

 

겸재는 자신의 문인의식을 중국 송대의

성리학자(宋朝六賢)등과
퇴계이황,송시열등으로 작품속에서

드러내고자 하였다.

 

 

    칠선생시화첩,정선,1746년,삼성문화재단

(宋朝六賢: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

명도(明道) 정호(程顥)•이천(伊川) 정이(程頤)•안락() 

소옹(邵雍)•횡거() 장재(張載)•회암(晦菴) 주희(朱熹)등을 지칭함

출처: 한국 고전용어사전

  등과 함께 퇴계이황을 그린 시화첩

    북송의 학자인 소옹(邵雍:1011~1077)시

명도춘일(明道春日)은 봄날의 아름다움

자연에서의 안빈낙도하는 삶을 노래한다.

정선의 문인화적 풍모를 담고 그 계보와 사상등을

이황,박자진,송시열 등으로 이어짐을 설파한다.

이하 정만수는 겸재 정선의 둘째 아들이고,

박자진은 정선의 외조부이다.

 

 

    

 

    염계애련(濂溪愛蓮) ,주돈이(周敦頤, 1017~1073)

북송의 성리학자로 그 호가 염계인 바, 그가

형이상학적 사유의 시장자로 알려져 있는데,

"연"을 무척 사랑하는 < 濂溪愛蓮>을 설파하였다.

 

 

 

   북송의 성리학자인 소옹(邵雍,1011~1077)

자는 요부(堯夫), 시(諡)는 강절(康節)

강절소거(康節小車:

春暖秋涼兼景好(춘만추량겸경호)

따스한 봄 서늘한 가을 경치가 모두 좋구나.

年豐身健更時和(년풍신건갱시화)

풍년 농사에 건강한 몸 시절도 화창하구나.

如茵草上輕輕碾(여인초상경경전)

방석같은 풀밭위 가볍게 굴러가고,

似錦花間慢慢扡(사금화간만만지)

비단같은 꽃 사이를 느리게 끌고 가네.

 

 

    독서여가도(讀書餘暇圖:1740~1741)

겸재가 평상시의 자신의 모습을 그림

 

 

    인곡유거도( (仁谷幽居圖,1740~1741),

간송문화재단 소장

인왕산 부근의 자신의 집과 주변을

실경으로 그림.

 

 

    정선의 사대부적인 문인의식

 

 

    청하성읍도(淸河城邑圖:18세기)

    겸재정선미술관 소장.

정선이 58세에서 60세까지 3년간

청하현감(현 포항시)을 지내면서

성읍의 풍광을 그림.

 

 

    쌍도정(雙島亭:1725년: 정선),

    삼성문화재단 소장.

성주(州) 관아에 있는 백화현 남쪽의

연못의 정자를 그림.

 

    겸재정선이 66세(1742년)에 그린      개인소장.

    연강임술첩( (漣江壬戌帖)의  웅연계람(熊淵繫纜)

    경기연천,임진강 뱃놀이를 마침

 

 

    겸재정선이 66세(1742년)에 그린

연강임술첩( (漣江壬戌帖) 의 우화등선()

임진강 뱃놀이의 시작(10월 보름)

 

飄飄乎如遺世獨立 (표표호여유세독립)

세상을 떠나 온 듯이 홀로 훨훨
羽化而登仙 (우화이등선)

날개를 달고 날아 올라 신선이 되어.       

출전: 소동파의 <전적벽부>

 

 

   

 

     임술년(1742) 10월 보름, 연천현감 신주백과 함께 

관찰사 홍(경보)공을 모시고 우화정 아래에서 노닐었으니, 

이는 소동파의 고사를 따른 것이다. 

신주백이 관찰사의 명을 받아 부(賦·문장)를 짓고 

나는 또 그림으로 이어서 각각 집에 한 본씩 소장했다. 

이를 ‘연강임술첩(漣江壬戌帖)’이라 이른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3155

 

66세 겸재가 그린 임진강 뱃놀이 세 벌, 마지막 한 점은 어디에 | 중앙일보

66세 겸재 정선(1676~1759)이 소동파의 고사처럼 임진강의 적벽에서 뱃놀이하며 그리고 쓴 화첩이다. 표지와 발문, ‘우화등선(羽化登船·우화정에서 배를 타고)’과 ‘웅연계람(熊淵繫纜·웅연에

www.joongang.co.kr

 

 

 

 

 

  겸재정선이 66세(1742년)에 그린

연강임술첩( (漣江壬戌帖) 의 우화등선()

임진강 뱃놀이의 시작(10월 보름)

 

 

        의금부도(義禁府),1929,정선작,개인소장


    악해첩,극락암(極樂庵,정선,1743~1745년),개인소장

 

 

    서원소정도(西園小亭圖,1740,정선),개인소장

 

 

    옥동척강( 玉洞陟崗,1739,정선) 개인소장

영조15년(1739년,6월) 소나기가 그친 어느날

이춘제(세종의 9번째 아들인 영해군의 10세손)가

인왕산 동쪽의 옥류동 자신의 집 뒤뜰 서원에서

'서원아회'라는 모임을 가진 후 인왕산 옥류동

산등성이를 올라 청풍계로 넘어가는 그림을 묘사.

 

 

        목멱조돈(木覓朝暾),1741년 (겸재가 65세때)

     목멱산(남산)의 일출장면을 그림.

 

    새벽 빛 한강에 떠오르니,

    언덕들 낚싯배에 가린다.

    아침마다 나와서 우뚝 앉으면,

    첫 햇살 종남산에서 오르리라.

 

 

 

 정선 필 경교명승첩(鄭敾 筆 京郊名勝帖:1740~1741)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보물1950호

비단 바탕에 수묵담채로 그렸으며, 화첩 형태이다.

크기는 세로 27.4㎝, 가로 27.4㎝이다.

 

    정선 필 『경교명승첩』은 조선 후기, 화가 정선이

한강변의 명승지를 그린 진경산수화 시화첩이다.

정선이 60대 후반 양천현령으로 근무할 때

주로 한강변 명승을 그린 것을 바탕으로 한다.

친구 이병연과 시와 그림을 서로 바꾸어

보여주자는 약속에 의해 그려졌다.

정선의 진경산수화 중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정선(鄭敾, 1676~1759)은 65세 때인 1740년 말부터

1745년 초까지 양천현령으로 근무하였다.

현령 근무 초기 친구 이병연(李秉淵, 1671~1751)과

‘시화환상간(詩畵換相看)’, 즉 이병연은 시를 짓고

정선은 그림을 그려 서로 바꾸어 보기로 약속하였다.

이에 따라 1740년 세밑부터 1741년 동짓달까지

만 1년간 이병연의 서찰과 정선의 그림들을 중심으로 하고,

여기에 그 후에 추가로 그려 보완한 작품들을 합장한 것이

『경교명승첩』이다.

 

    현재 2권 중 상권 20폭에는 그림이 19폭, 하권 22폭에는

그림이 14폭이 실려 있다. 상권에 실린 그림은 독서여가,

녹운탄(綠雲灘), 독백탄(獨栢灘), 우천(牛川), 미호(渼湖, 2점),

광진(廣津), 송파진(松坡津), 압구정(狎鷗亭), 목멱조돈(木覓朝暾),

안현석봉(鞍峴夕烽), 공암층탑(孔巖層塔), 금성평사(錦城平沙),

양화환도(楊花喚渡), 행호관어(杏湖觀漁), 종해청조(宗海廳潮),

소악후월(小岳候月), 설평기려(雪坪騎驢),

빙천부신(氷遷負薪) 등이다.

하권에 실린 그림은 인곡유거, 양천현아(陽川縣衙),

시화환상간(詩畵換相看), 홍관미주(虹貫米舟),

행주일도(涬幸洲一棹), 창명낭박(滄溟浪泊), 은암동록(隱岩東麓),

장안연우(長安烟雨), 개화사(開花寺), 사문탈사(寺門脫簑),

척재제시(惕齋題詩), 어초문답(漁樵問答), 고산상매(孤山嘗梅),

장안연월(長安烟月) 등이다.

작품들 외에 이병연의 서찰들, 정만수의 서간과 심환지의 발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일부 그림의 옆에는 정선이 쓴 이병연의 시구가 적혀 있다.

 

  『경교명승첩』에 수록된 그림들은 한강변 명승지를

그린 대표적 진경산수화로서 의의가 깊다.

지금은 도시 개발 등으로 파괴된 한강의 원래의

모습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인 것이다.

또한 회화적으로도 정선의 원숙한 진경산수화풍의

다른 일면을 잘 보여준다.

정선의 금강산 그림에서 주로 보이는

수묵의 강렬한 필묵 대신 청록, 혹은 연한 담채 등을

잘 구사하여 한강변 실경의 서정적 아름다움을

잘 표현했으며, 동시에 이병연의 시와 함께

한국적 시화 일치의 경지를 잘 보여주는 명작이다.

2017년 12월 26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출전: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진준현(전 서울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관)집필

 

 

 

    차봉서원(次奉書園: 이병연,1740년),개인소장

 

     안현석봉(鞍峴夕烽:

   양천현의 진산인 파산(巴山)에 올라서

안현(鞍峴:이화여대뒷산), 즉 갈마재에서

저녘 봉화 불을 바라보고 그 경치를 그림

 

계절 맛 참으로 좋은 때
발 걷으니 산빛이 저물었구나,
웃으며 한 점 별같은 불꽃을 보고,
양천 밥 배불리 먹는다.

鞍峴夕烽

 

 

    정선 필 경교명승첩(鄭敾 筆 京郊名勝帖:1740~1741)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보물1950

 

 

    빙천부신(氷遷負薪:

    얼어붙은 한강변을 따라서 나무짐(땔감)을

지고 걷는 이들을 그림.

 

    층층이 얼어붙고 나뭇짐 등에 져 있어도,

    올라오면 어려웠다 말하지 않네.

    다만 걱정은 도성 안이니,

    노래방에서 노래하고 춤추는데 춥지나 않을까.

 

 

 

    설평기려(雪坪騎驢: 唐 시인,맹호연(孟浩然)이

梅花를 찾아 파교(灞橋)를 건너 雪山으로 들어갔다는

故事를 그린것이다.)

 

눈쌓인 벌판을 나귀타고 가다. 1740년 가을.

 

길구나 높은 두 봉우리,     

(長了峻雙峰:장료준쌍봉)

아득한 십 리 벌판이로다.

(漫漫十里渚:만만십리저)

다만 거기 새벽 눈 깊을 뿐,

(抵應曉雪深:저응효설심)

매화 핀 곳 알지 못해라.

(不識梅花處:불식매화처)

 

양천현감으로 부임한 후 그해 눈쌓인 겨울

방문을 열고 밖을 보니 온 천지가 새하얀 눈으로

가득하여 문득 하얀 눈길을 따라 하염없이

걷고 싶은 마음 삿갓에 두터운 옷을 차려입고

나귀에 올라 아무도 몰래 동헌을 빠져나와 정처없이

길을 나섰는데 삼문앞의 고목밑을 지나니 양천들이

펼쳐져 있고 그 끝에 우장산 두 봉우리가 선명히

눈에 들어온다......증략

 

 

 

    소악후월(小岳候月: 영조 17년(1741)

비단에 채색한 23.0×29.2㎝ 크기의 작품으로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소악후월(小岳候月)은 소악루에서

달뜨기를 기다린다는 의미다.

 

파릉(巴陵)에 밝은 달 뜨니,

이 난간머리에 먼저 비추네.

두보(杜甫)시에 제구(題句)가 없으니,

마침내 소악루가 되었네.

교교한 달빛에 잠긴 양천 강변의

밤 경치를 그린 정선의 그림에 부친 시다.

뒷산인 파산에서 조감하여 오른쪽에

양천의 탑산, 두미암, 선유봉이 차례로 솟아 있고

대안의 절두산이 근경으로 보인다.

이병연은 파릉(巴陵, 양천의 별칭)의 달밤 풍경을

노래하면서 자신을 두보에 비유하는 등

시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내보이고 있다.

[겸재의 한양 진경] 최완수

출처 : donA.com - 겸재정선이 본 한양진경

 

    

        양화환도(楊花喚渡:

    양화진 나루터의 배가 돌아오는 장면.

 

 

    앞사람이 배를 불러 가면,

    뒷손님이 돌이키라 한다.

    우습구나 양화나루,

    뜬구름 인생 헛되이 오가는 것 같다.

 

 

 

    종해청조(宗海廳潮:

종해헌에서 조수 소리를 듣다.

 

 

    종해헌은 양천 현아의 동헌으로,

양천 현감시절 겸재는 종해헌에 앉아서

조수 소리를 듣곤하였다.  한강 하류는

밀물시에 밀려온 바닷물과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이 혼입되면서

만들어내는 소리를

겸재는 종해헌 누마루에 앉아 들었던 것이다.

 

    출전: 겸재정선미술관 해설

 

 

    크구나 너른 바다란 말 믿겠다.

    감개 어린 채 앉아서 조수 노래 듣는다.

    조종(宗) 길 막힌 후에,

    하늘과 땅 노기(怒氣)만 가득하다.

 

 

 

    금성평사(錦城平沙:금성의 평평한 모래밭.

    정선,1740, 난지도 ,간송문화재단 소장

 

    난간머리 젖어 드는 저녁 빛

    십리 석양호(夕陽湖)요.

    붓 들고 오래 읊조리니,

    평사낙안도(平沙落雁圖)로다.

 

 

    구학첩(丘壑帖:1783),삼도담( 三島潭),발문:이병연,조영석

    삼성문화재단 소장

 

    구학첩(丘壑帖): 봉서정(鳳棲亭: 발문,이병연)

                            단양 관아의 누정인 봉서정

 

    구학첩(丘壑帖): 하선암(下仙巖) 발문:이병연,조영석

 

 

  단양팔경( 丹陽八景),    출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것은 단양 남쪽의 소백산맥에서 내려오는 남한강을 따라

약 4㎞ 거리에 있는 하선암(下仙巖),

10㎞ 거리에 있는 중선암(中仙巖),

12㎞ 거리에 있는 상선암(上仙巖)과 방향을 바꾸어

8㎞ 거리에 있는 사인암(舍人巖),

그리고 단양에서 서쪽으로 8㎞ 거리에 있는 구담봉(龜潭峰),

9㎞ 거리에 있는 옥순봉(玉筍峰)과,

단양에서 북쪽으로 12㎞ 거리에 있는 도담삼봉(嶋潭三峰) 및

석문(石門) 등을 함께 일컬어 말한다.

제1경인 하선암, 제2경인 중선암, 제3경인 상선암은 계곡의 맑은

물과 바위가 어울릴 뿐만 아니라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피고,

가을에는 단풍이 물들어 아름다운 경치를 이룬다.

제4경인 사인암은 깎아지른 듯한 기묘한 암벽이 꽃병풍을

두른 듯 치솟아 있고, 그 아래는 맑은 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제5경인 구담봉은 남한강 줄기를 따라 깎아지른 듯한 장엄한

기암 괴석으로, 그 형상이 마치 거북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절벽의 생김새도 뛰어나지만 푸른 강물과 주위의 봉우리들이 어울려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아름다운 경치를 이룬다.

제6경인 옥순봉은 기묘하고 뛰어난 봉우리들이 마치 비온 뒤의

죽순처럼 솟아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경치가 빼어나 예로부터 소금강(小金剛)이라 불렸다.

제7경인 도담삼봉은 남한강 상류의 강 가운데 있는

세 개의 기암으로 된 봉우리를 말한다.

세 봉우리 가운데 남봉(南峰)은 첩봉(妾峰) 또는 딸봉이라 하고,

북봉은 처봉(妻峰) 또는 아들봉이라 한다.

중간봉 허리쯤에는 1972년에 세운 정자가 있어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마지막 제8경은 천연적으로 형성된 너비 15∼20m에 달하는

거대한 석문으로 산 위에 걸쳐 있어 매우 훌륭한 경관을 이루고 있다.

이 석문 부근에는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측백나무들이 자생하고 있다.

단양팔경은 충주댐의 완성으로 구담봉·옥순봉·

도담삼봉·석문 등이 3분의 1쯤 물에 잠기게 되었지만,

월악산 국립공원에 일부가 포함되고 수상과 육상

교통을 잇는 관광 개발이 이루어짐에 따라

새로운 각광을 받고 있다.

 

    홍관미주도(虹貫米舟圖: 정선,1740~41년)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경교명승첩에 실린 분홍색 무지개가 선명한 작품

 

 

 

    내연산 삼용추도(內延山 三龍湫圖)

    삼성문화재단 소장.

 

 경북 포항 내연산 12폭 중에서  연산폭,관음폭,잠룡폭포등이

소를 만든 곳을 삼용추라 하는 데 겸재가 이곳을 작품으로

담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겸재는 1733년경 청하현감(淸河縣監)으로 부임하여

재임 2년여간동안  내연산 삼용추등과 내연산 폭포및

청하성읍도등 명승지 5점을 그렸다한다.

 

 

  무송관산(撫松觀山: 18세기,정선)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먼산을 바라본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관폭도(高士觀瀑圖 :정선,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문인이 심산유곡의 폭포수를 완상하는 장면

 

    아래에 귀거래도10폭병(

    정선,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이건희 기증

 

도연명(陶淵明, 365~427 (62세)

     귀거래사(歸去來兮)

 

돌아가리라!
歸去來兮


밭과 뜰에 잡초가 무성해질 터이니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田園將蕪胡不歸


이미 스스로 마음은 몸이 시키는 일을 하니
旣自以心爲形役


어찌 실망하고 원망하여 홀로 슬퍼만 하겠는가.
奚惆悵而獨悲


이미 지나간 것은 바로잡을 수 없음을 깨닫고
悟已往之不諫


앞으로 올 것을 쫓는게 옳다는 것을 알았노라.
知來者之可追


진실로 길을 잃었으나 아직 멀리있지 않으니
實迷塗其未遠


지금은 옳고 지난날은 그르다는 것을 깨우쳤노라.
覺今是而昨非


배는 한들한들 가벼이 떠 다니고
舟搖搖以輕颺


바람은 살랑살랑 옷자락에 불어온다.
風飄飄以吹衣


먼길 가는 사내에게 앞 길을 묻지만
問征夫以前路


새벽빛은 희미하여 한스럽기만 한데
恨晨光之熹微

 


곧 오두막집을 보고는

乃瞻衡宇


비로소 기뻐하고 비로소 달려가니
載欣載奔


어린 종은 환영하고
僮僕歡迎


어린 아들은 문에서 기다리고 있다.
稚子候門


집 안 뜰은 황폐해졌으나
三徑就荒


소나무와 국화는 그대로 남아있구나.
松菊猶存


아이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가니
携幼入室


항아리에 술이 가득차 있어서
有酒盈樽


술병과 잔을 끌어와 스스로 따라 마시고는
引壺觴以自酌


기쁜 표정으로 뜰에 있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네.
眄庭柯以怡顔


남쪽 창가에 기대어 거만함을 부려보겠으니
倚南窓以寄傲


무릎 들일 만한 곳이 있다는게 편하고 편하다는 것을 알겠노라.
審容膝之易安


뜰은 날마다 거닐며 흥취를 자아내고
園日涉以成趣


문은 비록 달아놓았으되 언제나 잠겨 있지.
門雖設而常關


지팡이를 짚고서 가며 쉬며 하다가
策扶老以流憩


때로 머리를 들고선 멀리 바라보니
時矯首而遐觀


구름은 무심히 산봉우리에서 일어나고
雲無心以出岫


새는 날다가 지치면 돌아올 줄 아누나
鳥倦飛而知還


해는 어슴푸레 막 지려하면서
景翳翳以將入


외따로 선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서성이고만 있구나.
撫孤松而盤桓

돌아가리라!
歸去來兮


사귀는 걸 그만두고 놀러다니는 걸 끊어야지
請息交以絶遊


세상이 나와 서로 어긋나니
世與我而相違


다시 멍에를 말하겠는가! 어찌 구하리오.
復駕言兮焉求

 

친척 간의 다정한 이야기에 기뻐하고
悅親戚之情話


거문고와 책을 즐기면서 근심을 푸리라.
樂琴書以消憂


농부가 나에게 봄이 왔음을 알려주니
農人告余以春及


장차 서쪽 밭에 일이 있겠구나 싶어서
將有事于西疇


어떤 때는 수건 걸친 수레에 명령해보고
或命巾車


어떤 때는 외딴 배를 노 저어가며
或棹孤舟


그러는 동안에 아늑하고 고요한 골짜기를 찾거나
旣窈窕以尋壑


험준한 산길의 언덕을 지나가리니
亦崎嶇而經丘


나무들은 기쁜 듯 꽃으로 향하고
木欣欣以向榮


샘물은 졸졸졸 흐르기 시작하네.
泉涓涓而始流


만물이 제 때를 얻음을 부러워하노니
羨萬物之得時


내 삶이 끝으로 가고 있음을 느끼노라.
感吾生之行休


끝일 것이다!

已矣乎

세상에 몸뚱이를 의탁한 시간이 얼마 동안 성하겠는가.
寓形宇內復幾時


어찌 마음 가는 대로 떠나거나 머물지 않고
曷不委心任去留


어찌 허둥지둥 무엇을 바라고자 하는가.
胡爲乎遑遑欲何之


부귀는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요
富貴非吾願


천제(天帝)가 계신 곳이야 기대할 수 없으니
帝鄕不可期


좋은 시절을 생각하곤 홀로 가거나
懷良辰以孤往


아니면 지팡이를 세워놓곤 김을 매고 흙을 북돋우리라.
或植杖而耘耔


동녘 언덕에 올라서서 휘파람을 지르고
登東皐以舒嘯


맑게 흐르는 물 내려다보며 시를 짓겠노라.
臨淸流而賦詩


변화를 따라감에 힘입어 다함으로 돌아가리니
聊乘化以歸盡


대저 천명을 즐길 뿐 다시 무엇을 의심하랴.

樂夫天命復奚疑

 

 

 

 

 

   귀거래도첩,정선,18세기, 삼성문화재단 소장

 

風飄飄而吹衣 (풍표표이취의) 바람은 한들한들 옷깃을 스쳐가네

 

 

 

 

 

 

 

 

 

 

 

 

 

   송지문시의도( 宋之問詩意圖, 정선,18세기)

    개인소장,

 

당나라의 문인이자 시인인 송지문의 시

'영은사(靈隱寺)'속 2번째 구절을 겸재가

그림으로 해석한 시.

    

    고산방학도(孤山放鶴圖,18세기,정선)

    간송미술문화 재단

 

'매처학자(梅妻鶴子)'로 알려진 북송대 항주의

시인 임포(林逋, 967~1028)의 고사를 불러 세운다.

 

鳴似聞之, 香似播之, 曷若無聲無臭.

울음이 들리는 듯하고, 향기가 퍼지는 듯하지만,

어찌 들어도 소리가 없고,

맡아도 냄새가 없는 것 같겠는가.

 

 

    정문입설(程門雪),정선,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정(程)씨 문(門) 앞에 서서 눈을 맞는다.’는 뜻으로,

제자(弟子)가 스승을 존경(尊敬)함을 이르는 말.

 

 

    취성도(聚星圖),정선, 18세기,개인소장

 

   후한(後漢)의 명사인 진식(陳寔)이 구숙(苟淑)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 명성을 듣고 뛰어난 인물들(덕성ㆍ德星)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중국 고사를 화폭에 옮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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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재제시(惕齋題詩),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보물

(1740년~1741년)

  정선 필 경교명승첩(鄭敾 筆 京郊名勝帖)중에서,

 

생선을 선물받고 감사의 의미로 시를 쓰는 모습,

척재는 당시 노론의 영수였던 김보택의 호.

 

    파교설후(灞橋後),18세기,정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당나라 때 시인 맹호연과 관계가 있다.

맹호연은 일생 동안 관직에 나가지 않고 녹문산에 은거하였는데,

이른 봄이면 매화를 찾기 위해 당나라 수도인 장안의 파교(灞橋)를 건너

설산(雪山)으로 들어갔다는 고사가 전해진다.

맹호연의 고사는 세상을 등지고 살면서 시서화로 자오하였던

많은 문인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출전:[네이버 지식백과] 파교설후도 [灞橋雪後圖]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그림, 2008. 03. 10., 박은순)

 

 

    사문탈사(寺門脫蓑,경교명승첩,정선,1740~41년)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보물

정선은 ‘눈 내린 어느 날 율곡 이이 선생이 소를 타고

절에 찾아갔다’는 이야기를 소재로 시기를 달리해

여러 장의 그림을 그렸는데,

‘사문탈사(寺門脫蓑, 절 문에서 도롱이를 벗다)’

라는 제목의 풍속화다. 66세와 80세에 그린 ‘사문탈사’를

비교해 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른 화풍의 변화를

선명하게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변화는

율곡이 탄 소가 중국 물소에서 실제 율곡이 탔을 법한

조선 황소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산수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것을 모방하던 단계를 넘어, 조선만의 삶의 모습을

담아낸 풍속화를 진경풍속이라 한다.

출처 : 독서신문(http://www.readersnews.com)

 

    어초문답 (漁樵問對),정선,1740~41,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경교명승첩

 

    '어부와 나뭇꾼이 묻고 답하다.'

 

 

    송음납량도(松陰納凉圖:

    1739년,정선, 개인소장

 

   '소나무 그늘에서 시원함을 즐기다'

 

    

        고산상매(孤山賞梅:정선,1740~41,경교명승첩)

    보물,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조용한 산에서 매화를 감상하다.'

 

'매처학자(梅妻鶴子)'로 알려진 북송대 항주의

시인 임포(林逋, 967~1028)의 고사에서

'매화를 부인으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두었다는'

군자와 지조높은 선비의 상을 상징적으로 표현.

 

 

    운송정금도(雲松停琴圖:18세기,정선)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구름과 소나무 아래 거문고를 멈춘다.'

    자연과 하나되는 안빈낙도하는 삶의 모습을

    나타냄.

 

 

    고사관폭도(高士觀瀑圖),정선,18세기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덕망높은 선비의 모습을 그린 작품'

 

 

    여산초당도(廬山草堂圖 : 정선,18세기)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보물

 

    

        산수인물도(山水人物圖: 정선,18세기)

       삼성문화재단 소장.

 

 

 

        사계산수도첩(四季山水圖帖),정선,1719년

       호림박물관 소장

 

    봉래선경(蓬萊仙境: 봉래전도,정선,18세기초)

    개인소장,3M에 달하는 횡권